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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장아장 아기나들이 제20회 특별전
아장아장 아기나들이- 제20회 특별전
Child's Day Out -
  • 전시기간 2014.09.24 ~ 2014.11.23
  • 전시장소 보나장신구박물관 2,3층
  • 유물수

보나장신구박물관은 오는 9월 24일부터 11월 23일까지 제20회 <아장아장, 아기나들이> 가을 소장품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아기들의 의복과 장신구를 위주로 꾸며지는 특별 전시로, 본관의 소장품인 굴레, 까치두루마기, 전복, 아기노리개 등이 전시될 예정입니다.
조선시대 어머니들의 정성스러운 솜씨가 담겨 있는 아기들의 유물은 수가 한정되어 있고, 크기는 작지만 자수 기법이 뛰어나고 섬세합니다. 이러한 옷과 장신구를 한 자리에서 감상하면서 초가을의 정취와 함께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할것입니다.


*조바위
여성의 외출용 방한모의 하나로 조선 후기에 널리 사용되었다. 이후 방한보다는 장식적인 면이 강조되어 어린이들이 돌이나 특별한 날에 착용하였다. 앞뒤에 천도(天桃) 모양의 장식을 달거나 모란, 학, 박쥐, 복자 문양을 수놓는 등 여러 가지 길상 문양으로 아름답게 꾸며 어린이의 건강과 장수, 복을 기원하였다.

*복건
검은 헝겊으로 위를 둥글고 뾰족하게 만들었으며 뒤로 넓고 긴 자락을 늘어뜨리고 양 옆에는 끈이 있어 뒤에서 매도록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미혼의 남자들이 평상시에 착용하였다. 남자아기용 복건은 돌이나 경사가 있을 때 착용하였고 둘레에 박쥐, 국화문, 만수무강 등 길상어문을 금박해서 어린이의 건강과 장수,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마음을 나타내었다.

  • 배냇저고리

    배냇저고리


    목욕 후 처음 입히는 옷으로서 깃과 섶을 달지 않고 만드는 배냇저고리는 배내옷이라고도 하고 깃을 달지 않는다고 하여 무령의(無領衣)라고도 한다. 또한 고름대신 길게 실끈을 만들어 달아주며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다. 명주나 고운 무명 융 등 부드러운 흰색 옷감으로 겨울에는 누비로, 봄과 가을에는 얇은 누비나 겹으로 만들었으며, 한여름에는 빨아서 풀기를 뺀 모시나 베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왕실에서나 일반 여염에서나 아기가 태어나면 배냇저고리를 입힌다. 태어나자마자 우선 쌀깃에 싸 두었다가 사흘이나 일주일 뒤에 목욕을 시켰다. 배냇저고리는 소매를 길게 제작하였는데 이는 아기가 손으로 얼굴에 상처를 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지방마다 약간씩 달랐는데, 제주도의 배냇저고리는 ‘창옷’이라 하였고, 나주에서는 ‘배알옷’, 함경도에서는 여든 살까지 장수하라고 실 고름을 여덟 가락으로 달아 주었다. 혹은 아기에게 좋으라고 어머니의 무명 겹저고리를 뜯어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 색동저고리

    색동저고리


    여러 색 헝겊을 이어 붙여 만든 옷이다. 액을 면하고 복을 구하기 위해 음양오행설에 따라 붙인 것이기도 하고 승려의 자녀를 구별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옷감이 귀했던 그때의 상황을 고려하면 색동저고리는 어머니가 발휘한 생활의 지혜라고 하겠다.


  • 타래버선

    타래버선


    솜을 넣어 누빈 버선으로 명절복에 같이 신겼다. 버선볼에 불로초나 석류 등 길상무늬를 수놓고 버선코에는 다홍실로 술을 달았다. 또 버선이 벗겨지지 않게 버선목에 끈을 달았는데 남자아이는 남색이고 여자아이는 붉은색 이었다.


  • 굴레

    굴레


    조선 시대 가정에서 돌 무렵부터 4, 5세 정도의 어린이들에게 호사 겸 방한모로 씌웠다. 여러 가닥 굴레는 주로 북쪽 지방에서, 세 가닥 굴레는 서울지방에서 사용하였으며 지방에 따라 그 모양이 달랐는데, 전라도가 가장 화려하고, 개성 지방은 정교하며, 서울 지방은 얌전한 꾸밈을 하고 있다. 어린이용이었지만 부모 생존시 딸이 회갑을 맞을 때, 딸은 색동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고 굴레를 쓰고 어머니 무릎에 안겨보는 풍속이 있었다.


  • 전복

    전복


    갑오경장 이후 두루마기 위에 전복을 많이 입혔다. 주로 남색실로 지었고, 진동 단에 금박을 하였다. 금박에는 문양 말고도 인, 의, 예, 지, 효, 제, 충, 신 같은 글자로 덕담을 찍어 주기도 하였다. 전복에는 반드시 검은 천으로 된 복건이나 호건을 머리에 씌웠다.


  • 돌띠

    돌띠


    아기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여러 가지 장생 무늬를 수놓고 여러 곡식을 담은 염낭을 세 개에서 아홉 개 달아주어 부귀를 기원했다. 이 돌띠 풍속은 상류층에서 붉은 비단으로 만들어 의복에 묶던 금신(錦紳)과 형태가 비슷한 것으로 미루어 서민들이 상류층의 풍습을 따라하고 싶어 하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 까치두루마기

    까치두루마기


    길, 무, 섶, 고름, 안섶이 오방색(청,황,백,적,흑)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소매를 색동으로 하여 만든 두루마기로 남자아이의 돌 때부터 10세 전후까지 많이 입혔다.


  • 쪽배자

    쪽배자


    우리 전통 복식 가운데 첩리(帖裏)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의복의 하나이다. 「성호사설」에 의하면 고려시대 궁중에서 많이 입었으며, 원나라의 의복을 본떠서 만든 것이며 괘배(掛背)라고도 칭하였다. 조선시대 중기 궁중에서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여 양식 조끼가 등장하기 전까지 계속 입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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